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화와 칼 (문단 편집) == 판본 == [[대한민국]]에서는 을유문화사에서 처음 한국어로 [[번역]], 발행하였는데 작가 사후 [[퍼블릭 도메인|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여러 출판사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박규태[* [[종교학]] 전공자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도쿄대학]]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에도 막부]] 말기의 신종교 운동에 관한 내용이며, 일본의 종교와 사상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 반열에 있는데 2017년 [[신토]]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주는 '''신도와 일본인'''이라는 명저를 써서 호평을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있다.] 번역본은 영어식 표현을 단어 단위로 직역해놓아 번역의 질이 좋지 않다. 각자 판단할 수 있도록 일부 문장을 비교해 둔다. * 을유문화사본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전쟁 시기에 미국에 살았던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의 불신을 한 몸에 받는 무척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베풀어준 도움과 친절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한다. 특히 전쟁 시기 나의 동료였던 로버트 하시마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한 그는 1941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그는 당시 전쟁 난민 수용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미국의 전쟁 첩보기관에서 일하기 위해 그가 워싱턴으로 왔을 때였다. -<국화와 칼> 저자 서문 중에서 * 문예출판사본 >일본에서 태어났거나 혹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후 전시에 미국에 살던 일본인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그들은 미국인들에게서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이 책의 자료를 수집하면서 나는 그들의 협조와 후의를 받았다. 이 점을 증언하면서 나는 매우 큰 기쁨을 느낀다. 나는 그 일본인들에게 각별한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가운데 특히 전시에 나의 동료였던 로버트 하시마에게 감사한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는데, 1941년 미국으로 돌아왔고 '전시 외국인 격리수용소'에 억류되었다. 그 후 나는 그가 미국 군기관에 근무하려고 워싱턴에 왔을 때 그를 만났다. -<국화와 칼> 저자 서문 중에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